[Season 1] 기계치 일러스트레이터의 VR 비행 도전기
[Chapter 7] 가짜 하늘이 주는 진짜 어지러움
1. 모니터 밖의 세상 (Virtual Reality)
착용만 해도 조종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하는 VR 헤드셋은 내가 조종석에 앉아 있는 듯 착각하게 하는 놀라운 물건이었다. 오늘부터는 VR 적응 훈련이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헤드셋을 머리에 썼다. 렌즈의 초점을 맞추자, 좁은 내 방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낡은 세스나 152의 조종석이 나를 감쌌다.
“와…”
또 한번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건 모니터로 보던 것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조수석 너머의 날개가 보였고, 위를 올려다보면 선루프 너머로 눈부신 태양 빛이 쏟아졌다. 평면 모니터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계기판의 입체감, 그리고 까마득하게 펼쳐진 활주로 끝의 깊이감이 내 온몸을 자극했다. 나는 진짜 파일럿이 된 것 같았다.
자신만만하게 스로틀을 밀었다. 기체가 활주로를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기수를 들어 올리자 땅이 밑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생생했다. 나는 다시 심호흡을 하며 조종간을 왼쪽으로 꺾어 선회를 시도했다.
2. 뇌의 반란 (Motion Sickness)
그 순간이었다.
“욱…!”
갑자기 위장이 뒤틀리는 듯한 불쾌감이 명치를 강타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고, 방금 전까지 감탄하던 그 생생한 풍경이 끔찍한 감옥처럼 느껴졌다. 멀미였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나는 급히 헤드셋을 벗어 던지고 책상에 엎드렸다. 세상은 멈춰 있는데 내 머릿속은 팽이처럼 돌고 있었다.
3. 눈과 귀의 거짓말 (Sensory Conflict)
교관이 쓴 문장이 뒤늦게 머릿속을 스쳤다.
‘눈은 날고 있지만 귀는 앉아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야.’
그걸 **‘감각 불일치(Sensory Conflict)’**라고 했던가. 눈은 비행기의 움직임에 따라 “내 몸이 지금 왼쪽으로 기울고 있어!”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내 귀 안쪽의 전정 기관은 푹신한 컴퓨터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무슨 소리야? 나는 꼼짝도 안 하고 있는데?”라고 반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불쌍한 뇌는 이 모순된 정보를 해결하지 못해 ‘환각 상태’나 ‘독성 물질에 중독된 상태’라고 판단해 버렸고, 그 독을 빼내기 위해 구토 명령을 내린 것이다. 내 몸이 지극히 건강하고 정상이라는 증거라지만 당장 괴로운 건 어쩔 수 없었다.
4. 가짜 바람, 진짜 비행 (The Fan Trick)
“이대론 안 되겠어.”
나는 다시 헤드셋을 쓰기 전, 책상 구석에 있던 탁상용 선풍기를 내 얼굴 정면으로 돌렸다.
윙-
시원한 바람이 이마와 볼을 때렸다. 다시 비행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눈앞에 흔들리는 지평선 대신, 고정된 계기판과 저 멀리 움직이지 않는 산등성이에 시선을 고정했다.
신기했다. 얼굴에 와닿는 바람이 “너는 지금 바람을 맞으며 날고 있어”라고 뇌가 속삭여 주는 것 같았다. 시선을 멀리 두니 어지러움도 한결 가라앉았다.
가짜 하늘이 주는 진짜 고통을 이겨내는 법. 그것은 내 몸을 속이는 ‘바람’과 흔들리지 않는 ‘먼 곳’을 응시하며 비행하는 여유였다.
그렇게 나는 VR 비행 적응 훈련을 마쳤다.
- [시즌1 프롤로그] 잿빛 캔버스 위로 튄 파란 물감
- 1장. 거대한 검은 덩어리
- 2장. 타이탄 PC방 사장님
- 3장. 나만의 조종간. (feat. 메타파일럿 대여)
- 4장. 비밀의 문 뒤에는 괴물이 산다
- 5장. 설치만 150기가? 인내심 테스트
- 6장. 유튜브 선생님과 과외 쌤, 그리고 VR
- [1교시] 나의 첫 번째 날개 (Control Surfaces)
- [2교시] 여섯 개의 눈 (The Six Pack)
- [3교시] 시동과 활주 (Start & Taxi)
- [4교시] 중력을 거스르는 힘 (Take-off & Climb)
- [5교시] 수평 비행과 트림 (Straight & Level, Trim)
- [6교시] 마의 구간, 착륙 (Landing & Flare)
- 7장. 가짜 하늘이 주는 진짜 어지러움
- 8장. 목에 깁스를 한 파일럿
- [7교시] 길 잃은 아이와 나침반 (Dead Reckoning)
- [8교시] 하늘의 보이지 않는 도로 (Traffic Pattern)
- [9교시] 구름 속의 산책 (Instrument Flying Basics)
- [10교시] 초록색 바늘을 쫓아서 (VOR Navigation
- [11교시] 신의 붓터치, ILS (Instrument Landing System)
- 9장. 단추 하나로 거인을 깨우다
- 10장. 보라보라섬의 실기비행 (Cessna 152 Checkride)
- 11장. “합격입니다, 카야 파일럿” (Final Checkride)
- [에필로그] 회색 벽에 걸린 파란 하늘, 그리고…
- [등장인물] 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