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기계치 일러스트레이터의 VR 비행 도전기
[Chapter 8] 목에 깁스를 한 파일럿
1. 경주마의 비애
“아, 답답해! 활주로가 어디 있는 거야?”
다시 모니터 화면으로 비행 연습을 하던 나는 홧김에 중얼거렸다. VR을 쓸 때는 고개만 돌리면 옆이 보였는데, 모니터 비행으로 돌아오니 다시 **‘시야’**가 문제였다. 내 비행기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았다. 활주로가 옆에 있는지 뒤에 있는지 보려면 키보드 키를 눌러서 봐야 했다.
너무 불편했다. “목에 깁스를 한 것도 아니고, 옆을 못 보니까 비행을 할 수 없네.”
VR은 놀랍지만 매번 쓰고 하자니 눈이 빠질 것 같고(무겁고 피곤하다), 그렇다고 타이탄 PC방에서 보았던 수십만 원짜리 시선 추적 장비(TrackIR)를 사기엔 내 마음(지갑)이 허락지 않았다.
2. 파일럿의 목 (Hat Switch)
그때, 레이 튜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야 님, 시점 카메라 조종 연습은 했나요?”
“네? 시점이요?”
“그러니까 답답한 거예요. 모니터 비행의 핵심은 **‘가상의 카메라’**를 잘 다뤄야 하거든요.”
레이 튜터는 티타 님이 빌려준 조종간의 4방향으로 움직이는 고깔모자 모양의 버튼을 가리켰다.
“그게 바로 **‘햇스위치(Hat Switch)’**예요. 파일럿의 목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이 버튼이요?”
“네. 메타파일럿 유튜브 강의 보셨죠? 조종간에는 이미 3가지 카메라 화면 모드가 세팅되어 있어요. 자, 한번 눌러보세요.”
나는 조심스럽게 햇스위치 버튼을 왼쪽으로 딸깍 밀었다. 그러자 화면이 획- 하고 조종석의 왼쪽 창문으로 돌아갔다.
“자, 1번 조종석 카메라 이해했죠? 조종사 시점이 1번 카메라입니다.”
“네… 조종사의 고개를 햇스위치로 돌리는군요.”
“이번엔 2번 **외부 카메라(External View)**를 알아볼까요? 외부 카메라 버튼을 눌러요.”
딸깍.
“그러면, 비행기 밖에서 카야 님이 조종하는 비행기가 보일 거예요. 어때요? 늘 하던 게임처럼 익숙하고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죠?”
“와! 내 비행기가 이렇게 예뻤나? 구름이랑 같이 보니까 진짜 그림 같네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3번 목표물 카메라(Target View). 공항이나 활주로 또는 카야 님이 보고 싶은 곳을 보여주죠.”
3. 카메라 워킹과 구도 (Camera Walking & Composition)
햇스위치를 이리저리 움직이자, 화면 속 풍경이 자유자재로 춤을 췄다. 앞을 보며 조종하다가도, 엄지손가락만 까딱하면 날개 옆의 풍경이 보이고, 내 비행기의 배면도 볼 수 있었다. 몇 번 연습하면 금방 익숙해질 것 같았다.
“카야 님, 시점 조절은 단순히 구경하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레이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모니터는 작지만, 카야 님이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지죠. 그리고 전후좌우, 위아래. 이 **카메라 워킹(Camera Walking)**을 잘 해야 ‘내 비행기가 지금 어디에, 어떤 자세로 떠 있는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거든요.”
“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구도(Composition)**를 잡으라는 거죠?”
“역시! 일러스트레이터라 이해가 빠르시네요. 비행기 조종은 손으로 하지만, 상황 판단은 이 **‘카메라 앵글’**로 하는 겁니다.”
4. 커피 두 잔의 마법 (Webcam Eye Tracker)
햇스위치로 시점을 휙휙 돌리는 게 익숙해질 무렵, 레이가 또 하나의 꿀팁을 전수해 줬다.
“이제, 엄지로 돌리는 게 익숙해지셨으면, 마법을 하나 더 부려볼까요? 집에 웹캠(Webcam) 있으시죠?”
“네, 줌(Zoom) 화상 채팅할 때 쓰는 거 하나 있어요.”
“그거랑 **‘빔 아이 트래커(Beam Eye Tracker)’**라는 앱이 있으면 더 편하게 비행할 수 있어요. 비싼 장비 필요 없어요. 커피 두 잔 값이면 됩니다.”
레이가 알려준 앱을 설치하고 웹캠을 켰다. 그러자 내 눈동자와 고개의 움직임에 따라 빨간 점들이 내 시선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어? 어어?!”
내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돌리자, 모니터 속 화면도 부드럽게 오른쪽을 비췄다. 내가 화면 구석을 쳐다보면, 시점 카메라 화면도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와… 이거 완전 신기해요! VR 안 썼는데 VR 같아요!”
“연습할 때는 햇스위치나 웹캠을 사용하고, 체험이나 이벤트 비행을 할 때는 VR로 비행하는 것을 추천해요.”
5. 레디, 액션! (Ready, Action!)
이제 나는 더 이상 답답한 경주마가 아니었다. 햇스위치로 10시 방향의 활주로를 확인하고 자연스럽게 계기판을 훑어보고 가끔은 외부 시점으로 빠져나가 노을에 빛나는 비행기의 ‘인생 샷’을 감상했다.
“레디… 액션!”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45도 뱅크(Bank) 턴을 시도했다. 이제부터는 유튜브 강의를 쉽게 따라 할 수 있었다. 내 시선이 가는 곳으로 비행기가 움직였고, 모니터라는 사각 프레임 안에 갇혀 있던 내 비행기와 단조롭던 팔레트의 색이 무한대로 확장되고 있었다.
나는 파일럿이자, 내 비행 브이로그를 찍는 영화감독이 되었다.
- [시즌1 프롤로그] 잿빛 캔버스 위로 튄 파란 물감
- 1장. 거대한 검은 덩어리
- 2장. 타이탄 PC방 사장님
- 3장. 나만의 조종간. (feat. 메타파일럿 대여)
- 4장. 비밀의 문 뒤에는 괴물이 산다
- 5장. 설치만 150기가? 인내심 테스트
- 6장. 유튜브 선생님과 과외 쌤, 그리고 VR
- [1교시] 나의 첫 번째 날개 (Control Surfaces)
- [2교시] 여섯 개의 눈 (The Six Pack)
- [3교시] 시동과 활주 (Start & Taxi)
- [4교시] 중력을 거스르는 힘 (Take-off & Climb)
- [5교시] 수평 비행과 트림 (Straight & Level, Trim)
- [6교시] 마의 구간, 착륙 (Landing & Flare)
- 7장. 가짜 하늘이 주는 진짜 어지러움
- 8장. 목에 깁스를 한 파일럿
- [7교시] 길 잃은 아이와 나침반 (Dead Reckoning)
- [8교시] 하늘의 보이지 않는 도로 (Traffic Pattern)
- [9교시] 구름 속의 산책 (Instrument Flying Basics)
- [10교시] 초록색 바늘을 쫓아서 (VOR Navigation
- [11교시] 신의 붓터치, ILS (Instrument Landing System)
- 9장. 단추 하나로 거인을 깨우다
- 10장. 보라보라섬의 실기비행 (Cessna 152 Checkride)
- 11장. “합격입니다, 카야 파일럿” (Final Checkride)
- [에필로그] 회색 벽에 걸린 파란 하늘, 그리고…
- [등장인물] 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