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기계치 일러스트레이터의 VR 비행 도전기
[Chapter 3] 나만의 조종간. 아니면 빌리세요
1. 피아노를 마우스로 칠 셈인가
PC방 사장님, 티타 님은 내 노트북에 설치된 비행 시뮬레이터의 그래픽 옵션을 능숙하게 조절해 주었다. “이 정도 설정이면 모니터 비행 훈련은 무사히 마칠 수 있을 거예요.”라는 말에 안도감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앞섰다.
나는 문득 조심스럽게 물었다.
“티타 님… 이거 장비 반납하고 그냥 키보드로 날면 안 될까요? 화살표 키로도 비행기는 움직이잖아요.”
나는 충동구매한 것 같은 고가의 조종 장비 가격을 떠올리며 PC방 카운터에 엎드려 징징거렸다.
“헐… 손님, 게임도 아니고 시뮬레이션 비행을 키보드로 하겠다는 건, 피아노를 마우스 클릭으로 치겠다는 거랑 같아요.”
티타 님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게다가 VR 비행도 할 거라면서요? 눈앞이 캄캄한데 보이지 않는 키보드 자판 찾다가 1분 만에 추락할걸요?”
“그치만 너무 비싸잖아요! 취미 생활 하려다 파산하게 생겼다고요.”
2. 메타파일럿 스페셜 에디션
나의 절규에 티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카운터 아래에서 투박한 갈색 종이 상자를 끙 하고 끄집어 올렸다.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에요. 자, 메타파일럿 스페셜 에디션.”
상자에서 나온 물건은 시중에서 보던 매끈한 플라스틱 제품과는 달랐다. 표면에는 가로줄 무늬(3D 프린팅 적층 흔적)가 은은하게 보였고, 색상은 검은색과 짙은 회색이 섞여 있었다. 뭔가 공장에서 찍어낸 게 아니라, 공방에서 깎아 만든 듯한 느낌.
“이게 뭐예요? 어디 브랜드 건데요?”
“브랜드는 무슨. 내가 직접 만든 거예요. 3D 프린터로.”
“네? 3D 프린터요? 그럼 플라스틱 장난감 아니에요?”
3. 손가락이 기억하는 그립감
나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조종간(Stick)을 쥐어보았다. 그런데… 어라?
착-
손에 감기는 그립감이 놀라울 정도로 묵직하고 단단했다. 엄지손가락이 닿는 곳에 버튼이, 검지가 닿는 곳에 트리거가 정확하게 위치해 있었다. 내 손의 크기와 손가락 길이를 고려해 맞춘 것처럼 편안했다.
“어? 생각보다 느낌이… 진짜 쫀득한데요?”
“그렇죠? 시중 제품들은 고가의 실제 비행기 조종간이거나 아니면 게임용으로 버튼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거든요. 근데 이건 초보자의 비행 훈련에 꼭 맞게 만들었어요. VR 쓰고 눈 감고도 손가락 감각만으로 모든 버튼을 찾을 수 있게.”
4. 공대생의 미학 (The Engineer’s Aesthetic)
티타는 발판 두 개가 달린 묵직한 **‘러더 페달(Rudder Pedal)’**도 꺼내 보여주었다.
철물점에서나 봤던 튼튼한 알루미늄 프로파일과 스프링, 볼트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내 눈엔 ‘미적 감각을 잃은 공대생이 만든 기계 장치’로 보였지만, 묘하게 ‘훈련에 꼭 맞는 튼튼한 장비’라는 신뢰감이 들었다.
“이건 발로 차는 방향타예요. 세스나 같은 기초 과정에서는 필수 장비는 아니지만, 나중에 바람 부는 날 착륙하려면 꼭 필요하죠. 일단 조종간부터 써보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투박하지만 믿음직한 이 장비들이 나를 하늘로 데려다줄 날개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 [시즌1 프롤로그] 잿빛 캔버스 위로 튄 파란 물감
- 1장. 거대한 검은 덩어리
- 2장. 타이탄 PC방 사장님
- 3장. 나만의 조종간. (feat. 메타파일럿 대여)
- 4장. 비밀의 문 뒤에는 괴물이 산다
- 5장. 설치만 150기가? 인내심 테스트
- 6장. 유튜브 선생님과 과외 쌤, 그리고 VR
- [1교시] 나의 첫 번째 날개 (Control Surfaces)
- [2교시] 여섯 개의 눈 (The Six Pack)
- [3교시] 시동과 활주 (Start & Taxi)
- [4교시] 중력을 거스르는 힘 (Take-off & Climb)
- [5교시] 수평 비행과 트림 (Straight & Level, Trim)
- [6교시] 마의 구간, 착륙 (Landing & Flare)
- 7장. 가짜 하늘이 주는 진짜 어지러움
- 8장. 목에 깁스를 한 파일럿
- [7교시] 길 잃은 아이와 나침반 (Dead Reckoning)
- [8교시] 하늘의 보이지 않는 도로 (Traffic Pattern)
- [9교시] 구름 속의 산책 (Instrument Flying Basics)
- [10교시] 초록색 바늘을 쫓아서 (VOR Navigation
- [11교시] 신의 붓터치, ILS (Instrument Landing System)
- 9장. 단추 하나로 거인을 깨우다
- 10장. 보라보라섬의 실기비행 (Cessna 152 Checkride)
- 11장. “합격입니다, 카야 파일럿” (Final Checkride)
- [에필로그] 회색 벽에 걸린 파란 하늘, 그리고…
- [등장인물] 소개




